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2010 9/20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신천(新川)에 놓인 12개의 다리 중 하나인 수성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재래시장이다. 1945년 광복 후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 돌아온 전재민(戰災民)들이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시작하면서 생긴 시장으로, 신천제방을 따라 터를 잡았다 하여 방천시장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당시 수성교에서 남쪽으로 방천을 따라 약 500m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상인들이 새끼줄을 이용해 ‘井’자 모양으로 시장을 구획하여 복잡한 시장을 정리하였다 한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방천시장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으면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이 방천을 따라 느티나무 등의 고목이 많았고, 산짐승들이 주변의 밀밭과 채소밭에 내려와 밭을 파헤치고, 주막집의 가축을 물어 가기도 했다 하며 물 맑은 신천은 목욕터와 아이들의 물놀이터로 이용되었다 한다. 시장 남쪽 100m 지점에는 봉덕동형무소 죄수들의 노역장이 채소밭과 벽돌공장이 있었다. 방천시장은 경산·고산·청도의 주민들까지 이용하고, 호남·나주·이리(현 익산) 등지에서도 곡물이 올라와 판매되는 활발한 시장이었다.
2006년 현재 방천시장의 부지면적은 약 6,600m²이고, 좁은 골목길에 점포 130여 개·노점 10여 개가 들어서 있다. 점포의 절반 정도는 빈 상태이며, 상인수는 약 80여 명으로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쇠락된 상태이며, 시설정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로 채소·과일·곡물 등의 식품류와 잡화를 취급하고, 작은 음식점들이 있다. 주변에 대구백화점·대백프라자·동아쇼핑 등의 대형상가와 칠성시장·번개시장 등의 재래시장이 있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방천시장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으면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이 방천을 따라 느티나무 등의 고목이 많았고, 산짐승들이 주변의 밀밭과 채소밭에 내려와 밭을 파헤치고, 주막집의 가축을 물어 가기도 했다 하며 물 맑은 신천은 목욕터와 아이들의 물놀이터로 이용되었다 한다. 시장 남쪽 100m 지점에는 봉덕동형무소 죄수들의 노역장이 채소밭과 벽돌공장이 있었다. 방천시장은 경산·고산·청도의 주민들까지 이용하고, 호남·나주·이리(현 익산) 등지에서도 곡물이 올라와 판매되는 활발한 시장이었다.
2006년 현재 방천시장의 부지면적은 약 6,600m²이고, 좁은 골목길에 점포 130여 개·노점 10여 개가 들어서 있다. 점포의 절반 정도는 빈 상태이며, 상인수는 약 80여 명으로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쇠락된 상태이며, 시설정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로 채소·과일·곡물 등의 식품류와 잡화를 취급하고, 작은 음식점들이 있다. 주변에 대구백화점·대백프라자·동아쇼핑 등의 대형상가와 칠성시장·번개시장 등의 재래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의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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