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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기사]어느 한 곳에 비가 새면

세명페인트 방수공사 2010. 7. 17. 09:38

 [문화칼럼] 물길의 흐름을 살린 초가의 슬기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빗물이 걱정이다. 전통 초가 지붕에는 비 새는 법이 없지만 새로 지은 수십 억짜리 양옥은 곧잘 누수 현상이 발생해서 골칫거리다. 우리 대학 인문관도 지은 지 3년 만에 비가 새기 시작해서 여러 차례 거듭 방수공사를 했다. 왜 그럴까. 빗물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옥상구조 탓이다. 옥상은 빗물이 쉽게 흘러내리지 않고 고여 있도록 하는 평면 지붕이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을 뿐 아니라 어딘가로 스며들어가는 속성이 있는 까닭에 방수처리를 3중, 4중으로 거듭해도 약간의 틈만 있으면 옥상층은 물론, 그 아래층까지 빗물이 스며든다.
어느 한 곳에 비가 새면 초가는 해당 부분만 보수하면 그만이되, 양옥의 경우는 옥상 전체를 전면적으로 방수 처리하는 큰 공사를 해야 된다. 방수공사 비용은 물론, 폐기물 처리에도 수천만원이 든다. 서울대학은 작년에 중앙전산원을 비롯한 9동의 옥상 방수공사를 하고나서 폐기물 처리 예산만 2천100여만원을 썼다. 옥상을 뜯어낸 쓰레기는 자연으로 환원되지 않고 땅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문제도 안고 있다.

그러나 초가 지붕을 새로 일 때 걷어낸 묵은 이엉은 두엄으로 가서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는 거름 구실을 한다. 생태학적 순환성과 재활용의 이치가 살아 있는 것이 초가 문화의 전통이다. 따라서 짚으로 엮은 이엉을 덮은 초가 지붕은 겉으로 보기에 허술한 것 같지만 짚과 짚이 만나는 틈새로 물을 흘러내리게 하므로 빗물이 결코 집안으로 스며들지 않는다. 펜촉의 갈라진 틈으로 잉크가 흘러내리게 하는 원리와 같다. 농부들이 짚으로 엮은 우장을 쓰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우장을 쓰면 몸도 따뜻하고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으며 엎드려 모내기나 논매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초가 지붕도 방수는 물론 보온, 보습 효과까지 있다.

방수 공사는 밀폐 공사여서 비닐 옷을 입은 것처럼 기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지만 비가 샌다. 그러나 초가 지붕은 삼베옷을 입은 것처럼 기가 자유롭게 소통되는데도 비가 새지 않는다. 물 흐름의 이치를 이용한 초가 지붕의 슬기를 알게 되면 짚 대신에 쉽게 썩지 않는 재질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이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할 수 있다. 그러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방수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해마다 갈아 이는 초가 지붕의 불편함도 덜 수 있다. 김치냉장고와 돌침대의 발명처럼, 초가의 문화적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면 현대적인 지붕 양식을 새롭게 창조적으로 발명할 수 있다.

일본의 시라가와(白川) 마을은 독특한 초가 지붕의 전통을 고스란히 지속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많은 적설량에도 눈이 쌓이지 않고 쉽게 흘러내리도록 두 손을 모은 합장모양의 전통적 지붕양식을 잘 지키고 있는 까닭이다. 가을에 지붕을 새로 이는 날은 시라가와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몰려들어 이 광경을 즐긴다. 우리 시골에서도 이엉을 엮을 때는 밤참을 먹어가며 두레로 일을 했고 새 이엉으로 지붕을 이는 날은 찰밥을 별식으로 해먹으며 작은 잔치를 했다. 유네스코에서 일본 고유의 초가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그만한 문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회마을도 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초가를 비롯한 전통 가옥을 잘 유지하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개발 논리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회고주의로 치부하고 실용주의는 민속문화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쓸모없는 복고주의로 비판한다. 진정한 개발은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올바른 실용주의는 과거의 삶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현대적으로 쓰임새 있게 재창조하는 슬기를 발휘하는 것이다. 초가 지붕과 옥상구조를 견주어 볼 때, 4대강을 살린다는 구실로 자연의 물길을 막는 것은 물의 이치를 거스르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장마를 앞두고 구미보 상판 균열 소식이 그러한 조짐 가운데 하나이다. 장마와 홍수는 태초부터 있었고 올해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전통의 슬기를 거울 삼아 물길의 이치에 맞게 물 관리를 해야 현재의 위기도 극복하고 창조적 미래도 열어갈 수 있다.

임재해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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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07월 16일 -